평연이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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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오닌은 40대 이상 베트남 남성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전장 속에서 젊음을 보냈다. 바오닌이 소속돼 있던 제27소년여단은 500명의 소년들로 구성돼 있었는데, 그들 중 살아남은 자는 바오닌을 포함, 단 열 명에 불과했다. 살아남아 자유롭지 못한 바오닌은 말한다. “나는 전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썼을 뿐이다. 베트남은 해방전쟁에서는 승리했으나 싸워서 쟁취하고자 했던 것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도이머이 이후에도 작가들은 여전히 단어를 가려써야 했고 민감한 주제는 피해가야 했다.”

 1991년 베트남 문인회 최고상 수상을 수상하고, 1994년 영국 인디펜던트지 최우수 외국소설 선정되고, 국내에도 번역되어 나온 바오닌의 소설 <전쟁의 슬픔>은 베트남 문학사상 처음으로 전쟁을 더이상 이념이나 정치적 관점이 아닌 휴머니즘에 입각해서 그려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가는 전쟁을 그리고 전쟁 속의 병사의 운명과 사랑을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눈으로 바라본다. 바오닌에게 전쟁은 그저 전쟁일 따름, 그 앞에 어떤 수사도 붙지 않는다. 그의 소설에서는 더이상 모든 병사들이 해방전쟁의 영웅으로, 모든 죽음이 숭고한 죽음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의 소설 속의 병사들은 “호치민 만세!”를 부르며 기쁜 마음으로 산화해가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닥친 불운에 대해 분노하며 죽어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는 채 죽어간다. 그의 소설에는 북베트남 병사들의 고뇌와 갈등과 절망이, 심지어 도박과 마약, 강간과 자살의 이야기들이 다뤄진다.

 베트남평화의료연대에서는 2009년 하노이에서 바오닌 선생님을 만났다.

 

 

 

 

대담 기록

 

:: 일시 - 2009년 3월 15일 오후 1시

:: 장소 - 베트남 하노이

:: 참여 - 바오닌, 통역 - 구수정 선생님

:: 진행 - 이성오

:: 기록 - 조성민

 

 

 

총무

피곤하세요 괜찮으시죠 지금부터 일정이 예고된 대로 바오닌 전쟁의 슬픔이란 책을 쓴 바오님과의 대화를 시작하겠습니다. 일정은 1시 30분인데 3시 까지 진행될 예정이구요. 작가 분 말씀 듣고 질의 응답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책이 절판되어서 구입해서 보낼려고 했는데 선별적으로 10권만 보냈어요 우리 진료단 자료집에 있는 자료 참조 하시고 책을 받으신 분들은 잘 읽고 질의 응답 시간에 질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잠깐 작가분의 소개를 하겠습니다. 본명은 바오닌이 아니라고 해요. 태어나신 곳의 지명이고, 필명이예요. 본명은 나중에 설명 해 주실거구요. 우선 하노이에서 태어나셨고, 주요한 이력 중에 하나가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건데 1969년 청년 여단에 입대한 소년병 500명중 살아남은 10명중 한명이라고 하십니다. 그 당시 17살이었고 자원입대 하셨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1986년부터 작품 활동을 하셨는데, 전쟁의 슬픔이라는 작품은 1990년도에 출간하셨어요. 1991년에 이 전쟁의 슬픔이란 작품이 베트남문인회의 최고상을 수상하셨어요. 11개 국어로 번역됐고 1999년에 한국어로 번역됐는데, 베트남 말을 영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거예요. 읽어 보신 분 들은 알겠지만 직접 번역되길 희망한다고 말미에 적으셨거든요. 그걸 여기 계신 구 선생님이 하고 계십니다. 근데 이 전쟁의 슬픔을 발간하고 나셔서 사건을 겪으셨데요. 당시에 베트남 전쟁을 성전으로 하는 분위기였는데, 휴머니즘적인 시각으로 인해 곤란을 겪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엔 바오닌 작가분의 작품은 휴머니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작품이니까 궁금하신 점 많이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구수정

먼저 선생님께서 여러분을 처음 만나시기 때문에 간단한 인사말을 먼저 하구요. 저희 쪽에서도 선생님께 간단한 인사말 하고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바오닌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이렇게 아주 한국의 젊은 의사선생님들 한국의 젊은이들을 만나게 된 것을 굉장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가 굉장히 기쁩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작가인 동시에 베트남전을 직접 참가했던 사람으로서, 전쟁기간에 굉장히 고통 받았던 인민들 동포들을 위해 이 자리까지 와주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굉장히 기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저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베트남전쟁에 참전을 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여러분들은 우리의 전쟁에 대해서 굉장한 많은 이해를 갖고 계신 분들로 알고 있습니다. 저한테 친구가 있는데요, 친구가 된 계기도 베트남전 한국인 민간인 학살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오셨던 시점에 저와 친구가 된 시점이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오늘 이 만남의 자리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해 따로 설명한다 던지 하는 형식보다는 여러분들과 자연스럽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궁금증이나 저와 함께 나누고 싶은 의견이 있다면 기탄없이 개진해주시구요. 제가 할 수 있는 범주에서 답변하는 걸로 오늘의 자리를 끌어가고 싶습니다.

 

저는 항미 전쟁에 6년 동안 참전했습니다. 제가 싸웠던 곳은 서부 고원지대라서 참전 기간 동안에 한국군을 마주친 적은 없습니다. 다만 한국군들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굉장히 많은 얘기를 들었는데 그 시기에 한국군과 베트남 인민들 사이에 있었던 비극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잔인하게 베트남에서 행동해야 했을까. 어쨌든 우리가 오늘 이렇게 만났으니까 서로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제가 먼저 여러분에게 궁금한 걸 질문한다면, 여기 오신 의사 분들은 한국군과 우리 베트남 인민들 사이에 있었던 비극에 대해서 나름의 이해를 가지고 계신 걸로 알고있는데, 여기 계신분 말고라도 대다수의 한국인들. 참전 군인들이라던지 아니면 한국의 언론이라던지 한국의 지식인들 한국의 아주 젊은 세대들 이런 세대들은 과거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해서 생겨났던 그런 비극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대부분 알고 있는지 이런게 궁금합니다.

 

저는 한국을 세 번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에 대해서 막상 가보니까 한국 사람들도 평화롭고 순하고 착하고 특히 농촌지역에 가서 한국의 농민이나 접할 때면 참 좋은 사람들이구나 이런 인상을 받고 돌아왔는데요 그래서 더더욱 이런 의문이 깊어졌습니다. 이런 한국 사람들이 왜 베트남에 와서 그토록 잔혹한 이런 행동들을 할 수 밖에 없었는가 특히 서로 총을 들고 싸우는 군인과 군인 사이의 행동은 그럴 수 있다라고 이해하는데, 어떻게 한국군들이 양민과의 관계에서 그렇게 잔혹한 행위들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들이 깊어졌습니다. 그런 이유도 조금 알고 싶습니다.

 

총무님

선생님이 질문을 던졌는데, 정말 대답하기 힘든 질문인데요. 약간 표현이 맞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기 계신분들이 알고 오신 건 아니잖아요. 알려고 온거지. 그래서 선생님하고 토론할 위치는 아니고, 많은 질문과 응답을 했으면 좋겠는데, 일단은 전쟁의 슬픔이란 책을 매개로 해가지고 작가 분을 모셨거든요. 잠깐 말씀 듣다 보니까 오늘의 호치민 묘나 박물관이라던지.. 또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미라이 박물관이라던지. 진료단 일정 보시면 알겠지만 세군대의 민간인 학살 지역을 가거든요. 거기 가기 전에 사전지식이라고도 할 수 있고, 마음가짐이라고도 할 수 있고 이런 것을 새롭게 알 수 있는 계기니까요. 책에 국한 하지 마시고. 전쟁과 평화에 관련해서. 특히 한국군과 관련해서 질문을 던졌으면 좋겠습니다.

 

구수정

저희가 호치민 루트를 얘기 했잖아요. 바오닌 선생님이 그 루트를 직접 걸어서. 북에서 남으로 들어가서 남부 전장에서 싸우셨던.. 꽝남이라는 지역은 이남지역이에요. 그래서 호치민 루트를 알고 싶다던지. 전쟁을 온몸으로 겪으셨던 분이시니까 베트남전쟁에 대해서 물어봐도 되구요. 1975년 4월 30일 영광의 날에 대해서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운 날에 대해서 제가 설명을 못했는데. 선생님은 그날 공항에 계셨어요. 오랫동안 전장에서 싸웠던 사람에게 종전의 날은 어땠는지 이런 질문을 다양하게 던질 수 있을 것 같구요. 자신이 온몸으로 뚫고 나왔던 그 전쟁을 다시 책으로 옮겼잖아요. 이렇게 책으로 옮기는게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나 작업인지. 또 책의 내용이라던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1(이창열)

오전에 박물관에 갔을 때 미국에 대해서 열세였는데 그런 조건에서 베트남이 이길수 있던 요인이 뭔지. 두 번째는 해방이 된 이후에 미국의 경제적인 제한이라던지.. 그런건 어떻게 싸워이겼는지 알고 싶습니다.

 

바오닌 답변

너무 큰 질문이에요. 인류 역사에서 보면 침략자는 늘 강했어요. 베트남의 역사만 보더라도, 미국이전의 수많은 강국이 베트남을 침략했는데 언제나 늘 강했어요. 그럼에도 침략 전쟁의 결과는 역사에서 종국에는 늘 패배로 갈 수 밖에 없는데요. 미국은 군사적으로만 강할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강하고. 베트남은 낙후된 농업 국가였어요. 미국에 맞서서 군사기술 없고 보잘 것 없는 베트남이 미국과 싸워 이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여러 요인이 있지만, 중요한건 베트남 사람들의 애국심, 민족적 자존심. 이것이 가장 큰 동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미국과 맞서야 했던 베트남 측의 손실과 상처도 엄청났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그때는 21세기가 아니라 20세기였죠. 베트남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민족해방투쟁의 불길이 솟고 있던 시기였어요. 베트남이 싸울 수 밖에 없었고, 이길 수밖에 없던 건 결코 이 민족이 둘로 갈라지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21세기라면 얘기가 달라질거예요. 20세기에서 베트남인들에게서는 그것이 폭력이나 무장이나 전쟁을 통해서라도 통일 해야한다는 것이 베트남인에게는 절대당위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만약 21세기 였다라면 여러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20세기 베트남인에게서든 어떤 폭력적인 방법에 의해서라도 베트남을 다시 하나로 통일해야한다고 하는게 절대당위였다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계적인 문인들이 베트남에 찾아와서 저를 만나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베트남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통일을 했는데, 독일은 피를 흘리지 않고 장벽을 부수는 흡수 통일을 했는데, 과연 이제 20세기에 마지막 분단 국가 한국의 통일은 베트남의 통일 방식을 따르겠느냐, 독일의 방식을 따르겠느냐 이런 얘기가 한번도 빠지지 않는 주제였던 것 같아요. 어쨌든 베트남의 20세기에서는 우리의 통일 방식이 당위로 다가왔던거죠.

굴복하지 않는 민족, 그리고 투항하지 않는 민족을 보면, 나름대로 그런 민족의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굴복할 수 없을 경우에는 굴복하지 않지만. 이 사람들의 존재하는 방식이 있어요. 아마 베트남의 1975년 이후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베트남의 경우 1975년 이후에 사회주의 국가로서 사회주의적 길을 걸어왔는데요. 경제적으로는 베트남이 막다른 길목에 맞닥드리게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미국의 여러 가지 베트남의 견제, 경제봉쇄의 그런 외부적 요인들도 많이 어려웠구요. 거기서 베트남은 내가 보기에는 베트남의 방식대로 굉장히 더디지만 한발 한발 나왔던 것 같아요.

 

구수정

이정도로 질문의 답변을 끝내신 것 같은데, 다른 질문이나 보충할게 있으면 얘기 했으면 좋겠습니다.

 

질문2

반갑습니다. 전쟁의 슬픔이란 책을 읽었는데요, 작품의 시기가 1990년이면 작가 선생님이 참전 이후 20년 정도의 작품입니다. 그때 말씀하시고 싶은게 여러 가지가 있고, 휴머니즘, 전쟁의 슬픔, 고통과 아픔에 대해 말씀하셨고, 마지막에 길을 떠났고.. 2009년이면 다시 20년이 흘렀는데요.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의 변화된 생각이라던지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그게 궁금합니다.

 

바오닌

제가 전쟁에서 돌아왔을때 23세였는데. 그때도 어린 나이었어요. 그리고 나서 20년이 지나서 마흔에 접어들 때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저도 역시 베트남 사람이잖아요. 23살에 나는 사이공에서 영광의 승리를 직접 본거예요. 그 대단한 승리를 직접 목격하면서 저 조차 전승의 기쁨에 취하고 들뜨고 그랬어요. 다른 베트남인과 달리 본게 아니고 저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 베트남의 전승의 기쁨에 취하고 들뜨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그 어떤 전쟁이라도 늘 비극을 담고 있거든요. 마흔이 되니까 내가 치렀던 전쟁에 대해서 그 전승의 날에는 보지 못했던 전쟁의 비극, 이면, 진정한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그리고 왜 1990년이었냐 하면, 그때는 굉장히 우리 베트남인들에게는 특별한 시간들이었어요. 우리가 굳게 믿었던 사회주의진영들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는거예요. 소련부터 동유럽까지. 세계 사람들은 별 감흥이 없겠지만 우리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죠. 그러면서 그랬기 때문에 더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물들을 보게 됐던 그런 의미도 있는 시간들이었어요. 아마 그랬기 때문에 기존에 봤던 것들을 돌려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지고 우리들이 살아온 방식이 무너지기 시작해요. 사회주의적인 작품이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베트남의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하면서 자본주의적인 요소들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고, 개인들 같은 경우도. 예전의 삶의 방식이 완전히 변하면서 자본을 뒤쫓는 개인들의 삶도 변해가죠. 결국은 나도 베트남인이니까 한동안 그랬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살았는데, 어느 순간에 보니까 이런 변화가 처음에는 자유로운 것도 같고 돈도 많이 흘러다니는거 같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에 굉장히 사회적으로 비관주의를 낳는거예요. 예전에 없던 계급분화가 생기죠. 환경은 오염돼죠. 사람들의 생활은 각박해지죠. 개인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고, 베트남도 자신이 가는 길이나 속도를 통제하지 못하면서 표류하는 요런 상황이 왔어요. 그런 상황에서 저는 이 소설을 썼고, 또 20년이 흘러갔는데, 지금도 사실은 나는 여전히 베트남과 내 자신이 개인이 여전히 막다른 골목에 서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번에 꽝남지역으로 들어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꽝남도 이렇게 말할 수 잇죠. 전쟁의 시기에 중심에 있었던, 전쟁을 관통했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말 많은 피를 흘리고 참혹했던 지역입니다. 막상 가보시면 알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꽝남성이 한가롭고 평화롭고, 심지어는 사람들을 접촉하다보면 전쟁을 다 잊은 것 같고, 젊은이들은 전쟁도 모르는 것 같고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베트남인에게 전쟁의 상처나 슬픔 같은 것들이 너무 깊이 들어가는거 같아요. 사라지거나 잊혀지는게 아니라 자기 살처럼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박히는 그런 것 같아요. 마지막 말씀이 기억이 잘 안나요. 답변이 되셨습니까

 

총무님

또 다른 질문

 

질문3

저는 책의 내용에 있어서요. 너무 슬프고 해서 가슴이 너무 아팠거든요. 읽으면서 희망 찾기를 한다면, 끼엔이 전쟁에서 돌아오면서 푸엉 생각을 했고 그랬는데 10년의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고 다르게 살아와서 만났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그래도 서로 함께하지 못했고 가지 못했던 길을 아프고 힘들지만 끝까지 함께 했으면 좋았을텐데 왜 각자 길을 떠나야 했는지 궁금합니다.

 

바오닌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주변 국가들만 본다 하더라도 대부분 전쟁을 겪었어요. 겪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로, 전쟁은 거의 모든 인간들이 겪게 되는데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나처럼, 아니면 그들처럼 단 한번이라도 직접 총을 들고 전장을 뚫고 나왔다면 누구도 전쟁을 증오하지 않을 수 없을거예요. 그런 많은 사람들이 겪고 증오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잖아요. 작가인 나는 왜 이 개인의 증오가 더 확산되어 전쟁을 없애지 못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나는 어쨌든 이 책을 통해서 내가 가지는 전쟁에 대한 증오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것을 작가로서 전하는 걸 사명처럼 생각을 했어요.

나는 전쟁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전쟁은 인류에게서 가장 큰 산화라고 생각해요.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재앙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을 이어오면서 스스로 버리지 못합니다. 그토록 참혹하고, 재앙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전쟁을 버리지 못했어요.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전쟁이던지 자신의 전쟁에 대한 변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참여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런게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전쟁은 한 개인, 인간에게 있어서 보면 인생의 가장 잔혹한 상처들을 남기게 되는게 한 인간을 부셔버리는게 전쟁인데요. 전쟁이 남긴 어떤 상처. 육신의 상처 이런 것들은 어쩌면 여기계신 의사선생님들이 고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전쟁은 인간의 한 개인의 영혼을 박살내버리는 거거든요. 인간이 전쟁을 통해서 전쟁을 참여한 사람이 영혼에 받은 상처는 그 누구도 지우거나 시간이 가고 세월이 가서 흐려지거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아무는 것도 아니구요.

그래서 아까 말씀하신대로 둘이 서로 만나서 살 수 있었겠죠. 나는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 속에서 살았던 두 사람처럼 그렇게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이라면 겉으로는 보통 사람처럼 살았겠지만, 그들의 영혼의 상처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를거라고 생각한거죠.

나는 전쟁 속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직업이 2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하나는 의사라고 생각해요. 그 어떤 작가도 전쟁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의사도 전쟁의 상처를 치료할 수 없습니다. 전쟁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질문4

17살에 자원입대하셨다고 했는데, 입대하시게 된 동기가 뭔지 궁금합니다.

 

바오닌

17살. 지금 생각해보니 어린 나이었어요. 젊은게 아니라. 이제 와서 내 17살을 보니까. 너무 어린 나이었는데, 막 중학교를 졸업했어요. 그때는 17살이라는 나이가 가슴에서 피가 끓고, 애국심이 들끓고, 이 나라를 구해야할 것 같고. 그런 혈기 이런 것들이 가슴을 누르는 나이가 17살이었는데, 때마침 베트남에서는 청년들이 모두 군대 가는.. 파도처럼. 전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었어요. 거기다가 그때는 전사회적 분위기가 남자라면 총을 들고 전장에 가야하는.. 집에 남아서는 안될 것 같은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 그 나이 때는 이런 흐름에 휩쓸리잖아요. 역사적 배경 속에서 보면 그런 결심이 틀린 것은 아니었어요. 근데 자라고 나이들고 좀 더 긴 전 인류적 관점에서 그 시절을 보니까 그렇게 젊은이들이 전쟁에 나가는게 아니었어요.

 

질문5

연장선상에서 드리고 싶은 질문이. 500명의 소년군이 10명밖에 안남았다고 했잖아요. 바오닌씨는 살아 남은자로서 부채의식 이런게 힘들게 하진 않았는지.

또 호치민 영묘를 보고 호치민의 삶을 들었는데. 민족의 지도자 영웅의 호치민이라는 인물이 실제로도 개인적으로 행복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또 영묘의 방부처리 된 모습을 보면서 경외감보다는 정서적 거리감. 그리고 이것이 현재적 정치적 상징으로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바오닌

나는 책에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어요. 어떤 글에도 처음의 우리 소년 부대가 500명이 출발했는데 나중에 살아남은 사람이 10명이었다. 이런 류의 얘기를 쓰고 싶지 않았어요. 어쨌든 미국에서 책이 출판되면서 나에 대한 소개를 할 때 500명중 10명의 한명이다라고 소개했나 봐요. 개인적으로 그렇게 불리고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건 사실이에요.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런 정도의 손실은 너무 당연한 거였어요. 그렇게 강한 적과 싸워서 그런 손실은 당연한거였어요. 흔한 것이었어요.

사실 두 번째 질문은 민감한 질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외국인의 눈으로 봤을 때 그렇겠구나. 어떤 민족이든 그들이 아니고서는 모르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을거예요. 내가 한국에 가서도 가끔 그런 느낌을 받아요. 한국인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낍니다. 호주석이 우리 베트남인에게 그랬습니다. 베트남 사람이 아니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호주석이에요. 호주석을 저렇게 안치할 수 없던 그 무엇도 베트남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그 무엇입니다.

최근에는 베트남의 젊은 지식인들도 비슷한 의문을 아주 가끔 얘기합니다. 일반 베트남 사람들 지식인이 아닌 노동자 농민 실제로 지배를 받고 외세로부터 치욕을 경험했던 늙은 세대들은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아요. 우리가 그렇게 호주석을 받들고 존경하고 호주석을 보지 못한 베트남 사람을 위해 모시고 있는 것을 의심하지 않아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호치민이 살았던 20세기는 지금의 21세기와 달랐죠. 20세기를 살았던 우리들은 조국을 위해 희생하면 행복하다고 느꼈던 세대예요. 독립을 위해 죽는 것을 개인의 행복으로 알았던 세대예요. 21세기에는 달라지겠죠. 또 조국이 처한 현실에 따라서 행복의 개념이 달라지겠죠. 적어도 20세기 호치민이 살았던 베트남에서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게 개인의 행복이었습니다.

 

질문6

군사박물관에서 구수정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을 때는. 미국을 상대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상대했는지 궁금했는데. (잘 안들려서 질문 정리 못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이런 것 들을 어떻게 배제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바오닌

사실 정말 대단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근데 어쨌든 박물관을 거쳐서 베트남 민족을 보았다라거나 이해했다라고 말할 수 없듯이. 한 문학 작품을 보고서 나는 베트남 사람을 알았다거나 이해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문학 속에서 표현되는 한 개인은 작가에게 있어서 굉장히 개인적인 거예요. 작가가 문학 속에서 표현하는 것이 베트남 일반. 보편의 베트남 민족 이런 것들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내가 어쨌든 말할 수 있는 분명한건 내가 표현한 그 개인들도 우리 베트남에 있었다는 겁니다. 내가 표현한 끼엔이 베트남의 보편다수거나 민족의 정형화된 것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내 개인이 그려낸 그런 인물이고, 내가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는 건 베트남 전쟁 속에서 내가 그려낸 인물은 소수랄지 라도 있었다. 라는 거죠.

나는 하나가 전체가 될 수 없다라고 생각 안해요. 전체가 하나가 될 수도 없죠. 하나는 하나고 이게 모여서 전체의 틀을 만들겠지만. 하나가 전체다. 그건 아니에요. 이건 어느 민족이나 해당되는 말인데요. 저는 베트남의 선전문구 이런걸 너무 싫어하는데. 예를 들면 우리 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다. 인류역사에서 유래 없이 위대한 민족이다라고 선전한다던지. 아니면 우리 베트남의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미국을 이긴 유일무이의 무적의 베트남. 이런 선전 문구를 개인적으로 혐오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베트남 민족이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다른 세계의 어떤 민족과 다름없이 평범한 민족입니다. 라고 대답할 거예요. 어느 민족이나 자기의 조국이 침략당하고, 민중이 짓밟히는데 가만히 있겠습니다. 전 세계 어느 민족이라도 들고 일어서 우리 베트남 사람처럼 싸울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나는 그래서 베트남 민족은 아주 평범한 민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운 민족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질문 7

(질문 안들려요)

 

바오닌

전쟁 속에서 여성들을 보면 그랬던 것 같아요. 물론 전쟁이 끝나고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알았지만, 베트남 전쟁에서는 여성들이 역할이 정말 대단했죠. 근데 나중에 보니까 이 전쟁을 여성들의 막대한 역할이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었던게 아니라 끝내는데 있었어요. 끝내는데 있어서 베트남 여성들이 가장 막강한 힘들을 발휘하고 싸웠는데, 생각을 해보니까 그래요. 남성들 같은 경우는 전쟁을 수행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전쟁이니까 앞을 보며 가는게 남성이고, 여성들 같은 경우는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까 여성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자유롭게 사유하고 더 높게 사유하고, 나중에는 여성들이 항상 옳았어요. 내가 푸엉을 사실 이 책속에서 그렸던건 푸엉같은 경우는 그러잖아요. 전쟁을 거부하지는 않아요. 풍은 늘 전쟁의 이면을 얘기해요. 풍은 그런 존재예요 소설 속에서 나는 푸엉을 애인이었단 말씀을 안하시네요. 나는 그런 의미에서 그런 역할로서 그렸구요. 이 소설이 나온건 베트남이 도이모이를 할때였어요. 이전의 베트남의 소설 문학은 혁명의 도구였고 전쟁의 도구였어요. 우리는 그런 시절을 너무 오래살았어요. 늘 문학이 전쟁, 민족에 복무해야하는 그런 시절을 너무 오래 겪었기 때문에, 도이모이를 하면서 문학의 다른 역할들을 그려주고 싶었어요. 기존과는 다른 그런게 개인적인 생각, 작은 것일지라도 그런 시도를 하고 싶었는데, 그때가 도이모이 바로 직후잖아요. 그게 베트남 사회의 강한 찬반 논란을 불렀다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 시기가 그랬어요. 개방을 막 하고. 아직은 혼란스러웟던. 그 시기에 책이 던져지면서 굉장히 많은 논란, 혼돈들 이런 것을 가져왔는데 나는 그런게 당연했던 거에요. 베트남이 거쳐야할 과정, 수순이었던거. 나는 지금은 그런 것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총무님

시간이 됐거든요. 질문하시고 싶으신분? 우리 탕빈현에 가면 수요일날 저녁 모임이 탄타오 시인과의 만남이거든요 오늘 같은 비슷한 얘기를 또 할 수 있을거에요 관점은 다르겠지만 혹시 아껴뒀다가 그때 하셔도 돼구요. 끝날때가 됐는데. 선생님의 첫 번째 던지신 질문있잖아요. 그거에 대한 맺음을 하고 끝내야 할 것 같거든요. 이점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말씀해주실 분 있으세요.

 

질문

제 형님이 직접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71,72년. 거기서 들은 이야기인데 짤막하게 얘기합니다. 한국전쟁은 우리 스스로 일으킨 전쟁입니다. 우리 내전으로서 전쟁을 피하려고 했던게 아니라 일으켰고 그러다보니까 상당히 우리 내부적으로 잔인한 전쟁이 됐습니다. 민족 내부를 학살한 전쟁이 됐습니다. 반대급부로 반민족적인 세력이 민족적인 세력을 학살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베트남 전쟁에 다시 참여했습니다. 역사에서 처음으로 남의 나라를 짓밟은 게 월남전이에요. 거기서 첫 번째는 못사는 나라가 감히 우리에게.. 라는 점에서 우습게 봤어요. 두 번째 가면 갈수록 저항이 엄청난겁니다. 전쟁하면 베트남사람을 이길 수 없으니까 악에 바쳐서 양민학살을 잔인하게 수행했던 것이 우리가 베트남전에서 반성해야할 우리 역사상에서 최대의 오점이라고 할 수 있을 부분입니다.

 

구수정

우리가 논쟁할 시간은 없기 때문에요. 선생님의 개인의 생각이라고 전제하고 이 대답을 정리해 드리도록 하죠. 왜냐면 다른 생각이 있더라도 시간이 없으시죠?

 

총무님

마지막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핵심은 제가 생각하기에 그래요.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면 적과 아군이 나뉘면서 적은 죽여야 할 대상이 되고 그러는데, 그렇게 바라보지 말고 거대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소외되고 잊혀진 존재들 속에서 생각해보자. 그렇게 핵심이지 않은가 싶어요. 제가 맞게 정리 했는지 모르겠는데, 앞으로 개인적인 생각이 들것입니다. 미라이 박물관을 가고 답사지를 가고, 진료중에 베트남 사람들을 보다 보면 정리 될 수도 안될 수도 있고 그런데, 한번 자기 앞에 이런 화두가 생겼다 보시고 기간 동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이 자리는 끝내겠습니다.

 

바오닌

먼저 송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물론 나는 그것이 한국군이 여기 와서 잔학행위를 했던 모든 이유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 앉았던 사람들의 생각도 다양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선생님의 대답이 고맙고 저에게 좋은 대답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말씀드리고 싶구요.

그리고 사실은 전 너무너무 안타까운게 이 자리를 통해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물어보고 내가 듣고 싶은 얘기들이 참 많았어요 여러분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참 많은 것을 알고 싶었고.. 어쨌든 내 스스로를 한국인의 친구라고 생각해요.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굉장히 좋은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구요. 언젠가는 내가 뭐 작가로서든 기자로서든 한국과 베트남의 이 특별한 관계에 관해서 언젠가는 꼭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여러분들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여러분하고 다른 한 세대 전을 살았던 사람으로서 무엇보다도 전쟁에 직접 참전했던 군인으로서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리고 전하고 싶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감사하는건 두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그 첫 번째는 과거를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기억하려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여러분이 우리 베트남 인민들이 겪었던 고통과 아픔을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나는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사람이 전쟁과 같은 충돌 위에 있고, 사랑이 증오보다 위에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행동과 여러분들 자신의 항상 가장 상위의 개념인 사랑과 평화와 이런것들을 실천하는 젊은이들의 표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활동이 앞으로 계속 건승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축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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