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연이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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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반레시인만남-16기-2015.JPG

 

 

 

 

 

2015년 3월 8일(일)

사회 : 이성오

통역 : Lê Hoàng Ngân

기록 : 채소영

 

 

-  베트남 전쟁은 저나, 미군 또는 미국과 동맹국의 군인들 모두에게 기억하기 힘든 전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군은 일본의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했지만 그 보다 몇 배는 더 심한 피해를 베트남에 입혔습니다. 전쟁을 겪은 후 날마다 살고 있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전쟁의 아픔을 누군가와 얘기로 나누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  아군, 적군, 민간인 모두 전쟁 동안 많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쟁을 겪었던 나라들 중에 제일 안타까운 점은 사람이 죽는 것도 아픈 일이지만 그 나라의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특히 아픈 일입니다. 전쟁을 오랜 시간 겪으면서 베트남의 문화와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생명의 가치, 소중함을 잊게 만들 정도로 전쟁은 무서운 일입니다.

-  베트남에서다시사람들이체계가잡히려면많은세대를지내야할것같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말들이, 참전했던 군인으로서 전달할 수 있는 짧은 메시지 인 것 같습니다.

질문)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패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제가 생각하는 원인은 미국사람들이 베트남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베트남 전쟁 박물관에는 무료 입장이 가능하지만 미군들이 그런 것 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졌다고 생각합니다. 긴 베트남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나라(중국) 1000년 동안 베트남을 침략했으나 베트남을 지배하지 못했고 문화도 파괴시키지 못했습니다.

  아주 옛날부터 베트남의 홍군 때부터(우리나라로 치면 단군시절)한족이 베트남을 침략하려면 귀문관을? 지나야 한다고 합니다. 10명이 지나가면 9명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  9천년이 지나가니깐? 중간에 프랑스도 침략하려 했으나 물러났습니다. 저희는 무슨 힘으로 물리쳤을까요? 오랜 시간 단련되어온 베트남 사람들의 의지와 문화, 단결력 등이 외세를 물리쳤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생명을 몹시 경시하여 죽은 시체에 군화를 닦기도 하고 하였으나 그런 상황에서도 ‘품행’을 잃지 않으면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68년에 베트남에서는 사람과, 물자, 자원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었으나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품행 때문입니다.

  사랑의 힘으로 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겼습니다.  

질문) 한국인과 문화적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베트남과 한국 문화의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전쟁 때 한국과 베트남의 다른 점은 ..의식의 교육?- 베트남은 의식 있는 민족해방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한국군인들이 저희 참전군인들과 같이 불쌍합니다. 그 당시 사용했던 무기들을 다 싸서 한국으로 보낸 적 있습니다. 그걸 팔아서 필요한 걸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강대국에 의해 피해를 입은 거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국군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그랬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베트남의)전쟁은 인민전쟁이라는 건데, 모든 사람들은 공격을 받으면 두려움이 느끼게 됩니다. 그러한 두려움을 일으키기 위해 양민학살이 일으켰을 것입니다. 무섭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니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전쟁이 끝난 뒤 처음 다시 만나게 된 한국인들이 여러분들(진료단)입니다. 그 때 진료단이 온 모습을 보고 저의 생각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전쟁에서 총 앞에 모든 것은 적이라고 생각합니다(군인들이). 이제 저한테 전쟁은 적군, 아군 할 것 없이 사람만 있을 뿐 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있던 꽝하이 성에서 한국의사들을 처음 만났을 때, 직접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진심으로 말과, 행동으로 사과했습니다. 한국군의 행동을 통해서 중부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경험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한 민족이란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질문) 이러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는데 향후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져야, 진행되어야 좋을지?

  제가 말하는 것 보다, 지금 여러분들을 보고 있는 이것이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관계,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년이 어린 사람들은 모를 수 도 있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을 정말 좋아합니다. 자식에게 한국이름을 지어줄 정도로요. 보통 이름을 지으면 신고해야 되는데, 성 정도는 베트남 성으로 하자고.  김 말고 Ho 이렇게 (웃음). 뒤에 이름은 봐줍니다

  이런 것들이 베트남 내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 남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럼 이러한 기적 같은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이건 바로 문화때문..../ 이렇게 열린 사회에서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보고 서로 도와주며 살기 때문에 누군가의 마음속에는 아직 한이 남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사람들도 생각을 자꾸 바꾸고 있고, 마음을 열려고 노력 중입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던 말들이 어떠한 정치색을 담은 것이 아니라 두 민족의 발전을 위해 하는 말입니다. 한국에서 박근혜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많은 학살이 일어났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대해 생각하느냐, 한국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대통령은 그 나라의 다수의 국민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것이기 때문에 누가 당선되었는지 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잘 지내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베트남의 여러 지역에서 베트남인민들을 도와주고 있는데 그 정신 때문에 지금 잘 지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태술선생님 질문)

1.  베트남평화연대가 16기째 진료단이 왔는데,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보고 계셨다고 했다. 이러한 방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면 좋을지?, 21세기 유일한 분단국이 한국인데,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남북통일을 이뤄낸 베트남의 지식인으로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한국사람들(후배, …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  사실은 제가 16년동안 평연의 활동을 지켜보진 않았고 가끔 지켜보는 정도였는데, 활동에 대해 평가하기가 그렇기 때문에 좀 어렵습니다. 멀리 지방에서 진료를 하게 되는데, 그 곳에서도 사람들이 한국드라마를 많이 봅니다. 드라마에서 본 한국과 실제로 사람들을 만났을 때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친구를 만날 때마다 한국이 아직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것에 대해 유감이라 생각하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전쟁은 한 민족을 통일하게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다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동독과 서독의 사례도 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 민족입니다. 같은 언어를 쓰지만 의식체계가 다를 뿐. 아마 한반도를 지키고 있는 강대국들이 우리 민족을 통일시키진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힘을 키우지 않는 한 힘들 것 같습니다. 한반도의 충돌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강대국의 간섭? 중재를 기다리는 것 보다 우리 스스로 일어나야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의 경험으로서 강대국들이 말하자면 소련, 중국,.. 베트남은 마지막 미국까지 몰아내고 두 민족이 나라를 세우길 바랍니다. 호치민 주석은 남 베트남 공화국과 논의하여 같이 세웠습니다. 당시 강대국의 간섭이 없었으면 베트남에서 통일을 더 빨리 이루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베트남의 경우, 통일 후 몹시 가난해서 국제사회에서 힘도 약했습니다. 그래서 남북통일에 대해 말하자면 인민들에 거대한 믿음을 세워줘야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윤헌식 선생님 질문)

시인이자 소설가, 영화감독이신데…. 많은 시대적인 변화를 직접 겪으셨는데, 그러한 경험이 어느 분야에서 강하게 작용했는지, 앞으로 새로 개척해 나가고 싶으신 분야가 있으신지?

  저는 멍청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분야에서 일했다면 더 깊이 알고 더 큰 기쁨을 알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겐 운명이 있고 글 쓰는 일, 영화를 만드는 일 이 다 재미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 길을 선택했고 그것이 운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최근 몇 년 동안 제가 글 쓰는 것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시인이라는 직업은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끝까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시인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서는 공부해야 할 게 너무 많았기 때문에 접었습니다 ^0^ㅎㅎㅎ

주현정 선생님 질문)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로서 개인적인 질문을 여쭤보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았어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슬픔이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참전자로서 그 부분에 대해 해주실 말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정말 재미있는 질문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아무리 강해도 전쟁의 후유증을 겪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다가도 헬리콥터 소리와 전쟁 당시의 소리가 들려 불면증에 걸리기도 했었습니다. 여러분이 전쟁을 겪지 않은 것은 다행입니다. 전쟁은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그런 상황보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의 말 때문에 힘들 때가 더 많습니다. 고향에 돌아 갔을 때 한 아이의 아버지가 군인이었는데, 그 아이가 저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냐고 물었고 죽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왜 자신의 아버지는 죽었는데 아저씨는 살았냐고 되 물어 봤을 때 답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저의 삶도 죄이지 않을 까 생각했습니다. 이 사실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과 오랜 시간 동안 평화롭게 살고 있는 것이 저에게 보약이라 생각합니다. 그 약을 계속 먹고 치유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성오 선생님 질문) 죽는 것 보다 더 아픈 것이 슬픈 것이라고 함. 작년 진료단 왔을 때 우리나라에서 세월호 사건이 터져 많은 사람들이 슬펐다.

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티비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은 베트남 사람들도 같이 아프고 슬펐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위로를 전달할 수 없었으나 마음속으로 세월호 유족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어떤 죽음에 대한 위로나 나눔은 항상 필요하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고 나누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 어떤 말을 나누는 것 보다 사람의 무관심, 무시로 인해 일어나는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아버지든 어머니든 위로가 되진 못하지만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슬픔을 잠깐 덮고 그 사람들이 더 잘 살수 있게 서로 도와주고, 앞으로 인생은 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태환선생님 질문)

평연과 인연을 맺은지가 16년 정도 되었는데, 평연이 한국에서는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위령제에 참여했는데 , 그 내용을 영화로 찍은 분이 반레선생님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 영화를 찍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우리가 그 영화를 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제목은 ‘억울한 혼의 유서’입니다. 그 당시 구수정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구수정선생님 얘기를 듣고 나서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전쟁 당시를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베트남평화의료 연대를 포함하여 많은 단체들이 찾아와서 사과도 하고 하였는데, 그 때 활동하던 모습도 찍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다 기회고 인연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 촬영했던 것은 비디오 테이프라 씨디로 옮기면 화질이 깨질 수 있지만 원하신다면 컴퓨터로 보내줄 수 있습니다.

  아까 그 영화를 보면 10년전 여러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영화를 만들 때 베트남과 한국 수교 10주년 이었기 때문에 처음 영화를 만들었을 때 반응이 좋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고 그 해 우수감독상과, 시나리오 상을 받았습니다. 그에 대한 보답은 더 좋은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들과 인연을 맺고 만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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