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연이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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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팜티호아 할머니 유가족과의 만남

 

일시 : 2018년 2월 28일(수)

진행자 : 구수정(이하 구)

만난 분 : 큰 아들 록 아저씨 (이하 록)

기록 : 정선화

 

구 : 록 아저씨를 먼저 소개할게요. 학살 당시 다낭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어서 학살을 모면하고 75년에 마을로 다시 들어왔어요. 여기가 청룡부대가 있던 자리라 이 일대가 다 지뢰밭이었대요. 다시 돌아와서 집도 다시 짓고, 75년에 땅을 개간하다 지뢰가 터져서 두 눈을 다치셨어요. 제가 처음 뵈었을 땐 희미하게 형체를 인식하는 정도였는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나고 지금은 완전히 실명하셔서 여러분을 볼 수 없습니다. 집은 익숙해서 걸어다니시는데 여러분들을 보고 싶은데 못 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트남 친구들 인사 한 번 해주세요.

 

록 : 몇 학년이에요? 이렇게 많은 베트남 친구들이 온 건 처음이네.

 

구 : 우리도 목소리를 크게 해서 인사를 합시다. 한국의 치과의사 선생님, 한의사 선생님들, 치과위생사 선생님들, 그 밖에 학생들이 오셨다고 말씀드렸어요. 치과의사 선생님들 먼저 인사해 주세요.

 

한의사 선생님-치과위생사 선생님-학생들 및 의료진 외 사람들 인사

 

록 :  멀리 한국에서 오신 치과의사, 한의사, 치과위생사, 학생들 등 진료단 여러분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미 위령비에 참배하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참배 후 저희 집을 찾아 저희 어머니에게 향을 바쳐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하단 말을 전합니다. 베트남은 설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 설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시고, 올 한 해 많은 행운이 깃들길 축원드립니다.

 

구 : 저희도 인사를 드렸으면 좋겠는데요, 누가 할까요? 한국 선생님 한 분과 베트남 친구 한 분이 인사를 드렸으면 좋겠어요. 김정우 사무국장님, 안 보이시니까 손을 잡아드렸으면 해요.

 

정우 : 할머니 돌아가실 때 못 와서...

 

록 : 여기 많이 왔다면 우리 어머니 살아계셨을 때 왔겠네요? 그때는 내가 완전히 안 보이진 않았는데...

 

정우 : 처음 왔을 때 딸이 굉장히 작았는데 결혼해서 벌써 딸이 둘이 있어요.

 

록 : 아이가 몇 명이나 있어요?

 

정우 : 아... (베트남어) 작년에 저희가 할머니 댁을 못 왔는데 올해는 올 수 있어서 다른 사람들도...

 

록 : 남편이 한국 사람이지?

정우 : 네. 오게 돼서 너무 좋고 몇몇 사람들도 할머니 생각이 날 거라고 생각해요. 깔끔한 거 보니까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네요. 건강히 지내시고, 뵙게 돼서 기뻐요.

 

록 : 우리 어머니 살아계실 때랑 똑같죠?

 

정우 : 네. 들어오자마자.

 

록 : 나도 여러분이 굉장히 그리웠고 여러분들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잊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을 만나고 나면 하나하나가 내 가족같아요. 전쟁이 우리에게 이런 아픔들을 남겼지만 그건 과거로 흘려보내야지 어쩌겠어요. 여러분을 만날 때마다 가족을 만나는 느낌이에요.

 

우리 어머니가 너무 빨리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여러분들 보면 너무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사진 좀 가져올게요.

 

구 : 막 학살이 일어나서 두 다리가 잘렸을 때 찍은 사진이에요. 우리 어머니 사진입니다. 옆에는 아버님이시고요, 아버님은 학살 전에 돌아가셨어요. 아버님이 남베트남의 관리였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요. 같이 찍은 사진은 아닌데 돌아가셨으니 같이 계시라고 포토샵해서 같이 모셨다고 해요. 하늘나라에선 함께 계시라고 만드셨다고 해요.

 

정우 : 너무 생각나요. 다들 저와 비슷한 잔상이 있을 것 같은데, 살아계셨으면 문 앞에 나와서 기다리셨을 텐데... 딱 웃으면서 기다리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마 다른 사람도 그럴 것 같아요. 건강하시길 바라요.

 

록 : 정말 고마워요.  

 

구 : 오늘 여기 처음 오시는 분도 많이 계시죠? 처음 오시는 분 손 좀 들어주세요. 처음 오셨던 분들도 계시고 해서 할머니 돌아가실 때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예전에 오셨던 분들도 아마 자세히는 못 들으셨을 것 같아요.

 

여기 정우 선생님도 할머니 기억하면서 울먹이셨는데 할머니가 우리들을 정말 아껴주셨어요. 저희가 오면 동네 아이들을 불러서 야자 열매를 따오라고 하신 뒤에 갓 딴 야자열매를 저희에게 주시곤 했어요. 그리고 할머니는 좀 유명하신 분이세요, 하미 비문 사건도 있고 해서. 그래서 미국인이나 일본인도 많이 찾아오는데, 일본인들은 꼭 선물로 차를 가져오거나 모찌떡을 준다고 해요. 그럼 할머니 따님의 아들, 즉 손주한테도 일본인들이 모찌떡을 안 줬대요. 그걸 꽁꽁 숨겨놨다가 한국 아이들이 오면 내주셨어요. 그럼 시퍼렇게 곰팡이가 슬어있어요. 할머니는 잘 모르시니까 귀한 거라고 생각해서 숨겨놨던 거죠. 그럼 아이들이 그걸 할머니가 주신 거라고 다 먹었어요. 할머니가 일본인이 가져온 차도 아꼈다가 한국인, 우리들을 오면 내오시고 그랬어요. 아마도 할머니의 그런 모습들이, 예전에 할머니 뵈었던 분들이 지금 마음에 남는 것 같아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쯤에 여기 록 아저씨가 굉장히 많이 아프셨어요. 그래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큰 수술을 해야 했거든요. 그런데 할머니는 자식을 잃어본 경험이 있잖아요. 그래서 록 아저씨가 큰 수술을 하고 어찌 될지 모른다고 하니까 그때부터 거의 식음을 전폐하신거에요. 그러면서 록 아저씨는 병원에 가면서 간호해야 하니까 사모님이 따라가셨는데, 취직한 딸을 일을 그만두게 하고 집에서 할머니를 모시게 했어요. 그런데 그때부터 할머니가 거의 실어증을 앓다시피 했다고 해요. 록아저씨가 떠나니까.

 

할머니가 한국인들을 그렇게 아끼시더니... 제가 보면, 할머니들은 돌아가실 때 뭔가 징후가 나타나요. 저희를 그렇게 아껴주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저희들에게 고함을 치셨어요. 그때쯤 관을 사 내라고, 내가 죽을 것 같은데 억울해서 내 자식에게 내 장례를 못 맡긴다, 내 자식이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살았는데 어떻게 맡겨, 너희들이 관 사내. 이렇게 화를 버럭버럭 내셨어요. 저희가 정말 당황해서, 할머니가 이렇게 하신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때 한홍구 선생 등이 계셨는데 할머니 손을 딱 잡고 관 사드리겠습니다. 장례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라고 약속을 했어요.

 

그러니 할머니가 가장 좋은 나무로 관을 짜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할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할머니가 아직 살아계신데 장례 준비를 할 수 없잖아요. 근데 갑자기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고 눈앞이 캄캄한 상황인데 록아저씨가 아프셨던 거죠.

 

얘기를 듣자하니 할머니가 실어증에 걸려 말도 한 마디 못하기고 곡기를 거의 안 넘기신다. 그래서 이쪽에서 전화만 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던 때였는데. 록아저씨 동생이 있어요. 이따 사진을 보시면 굉장히 귀여워요.

 

이 록아저씨 동생은 75년에 팜티호아 할머니가 이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했을 때 그렇게 반발을 했대요. 나는 무서워서 못가겠다고. 그 끔찍한 곳에 왜 돌아가야되는지 모르겠다고. 여긴 너무 끔찍해서 못 살 것 같다고. 그런데 팜티호아 할머니가 그래도 거길 가야 땅이 있고 집 터도 있다면서 여길 온 거죠. 그래서 록아저씨 동생은 잠도 안 자고 집 밖으로만 돌았대요. 그러다가 이른 나이에 호주로 이주 노동을 떠나요. 호주에서 일용직 건설노동자를 하면서 살았는데 여기 어머니가 계시니까 동생이 호주에서 번 돈을 보내줘서 집을 지어줬어요.

 

듣자하니 탄 아주머니께서 저희가 안 간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저희 때문에 60인분의 밥을 해두셨더라고요. 밖에 상차림이 그거였어요. 여기도 항상 식사 때 오면 늘 붙잡으세요. 여기서 밥을 먹으면 주먹밥과 소금이 나와요. 여긴 현금이 하나도 없어요. 집은 멀쩡한데 밥은 그렇게 나오더라고요.

 

그나마 호주에서 일하는 동생이 돈을 좀 근근히 보내줘서 할머니 약도 사주고 했는데, 이 동생이 어느 날 공사 현장에서 추락해서 노동력을 상실하게 돼요. 그때부터 동생이 여기로 올 수가 없는 거에요. 10여 년 째 못 오고 있었어요. 그래서 할머니는 집에 혼자 있고, 록아저씨는 병원에 있다 퇴원하는 즈음에 록아저씨 동생이 땡빚을 내서 돌아온 거에요. 공교롭게도 퇴원하는 날 동생이 온 거죠. 할머니는 너무너무 기쁘셨대요. 큰아들은 살아오고 작은아들도 돌아오고. 그래서 그 날 할머니가 굉장히 기뻐하셨는데 다음 날 아침에 할머니가 아들 둘을 불러다 앉혀놓고서 록아저씨 말씀에 의하면 한 3시간 정도 집안 대소사를 일러주셨대요. 그리고 마지막에 내가 없어도 한국 친구들이 찾아오면 내가 한국 친구들 대한 것처럼 너희들이 해야 된다고 하셨대요. 내가 오늘 한국 친구들을 못 보지만 친구들이 오면 꼭 ‘내가 용서하고 떠났다’고 전해달라고도 하셨대요.

 

제가 굉장히 많은 할머니들을 만나 뵙고, 99년도에 만난 할머니의 95% 이상이 거의 다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20년 동안 만난 할머니들 중 최초로 용서라는 말을 하고 떠나신 분이에요. 그리고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을 모셔오라고 했대요. 그러고서 할머니는 마을사람들에게 ‘내가 원한도 미움도 증오도 다 가져갈테니 이제 한국 사람들 그만 미워하라’고 하셨대요. 내가 그 때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비문을 지키려고 한 사람인데 이제 세월도 지났고 비문은 그냥 둬도 될 것 같아. 한국에서 아이들도 많이 오는데 그들이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이제는 그냥 둬도 될 것 같아. 이렇게 마지막 당부를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날 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막내아들이 죽을 한 그릇 쒀서 드리니까 할머니가 좋으셨나봐요. 거의 한 달을 식음을 전폐하셨는데 한 그릇을 다 드셨대요. 그러더니 얘들아 너희들도 배고프겠다, 빨리 가서 밥 먹어라. 라고 해서 막 밥상에 둘러앉았는데 쿵 소리가 나더라는 거죠. 그래서 방에 들어가 보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요.

 

그 후 제가 연락을 받고 여기 유가족 협의회가 있어서, 할머니 장례를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한국 친구들이 많이 올 거다... 베트남도 3일장이에요. 그런데 유가족 협의회에서 한국 친구들이 오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5일장을 하자고 된 거에요. 그래서 저는 평연 등 유관단체에 부고를 전했죠. 부조금을 굉장히 빠르게... 평연도 400만원 정도. 제가 그때 당시 베트남에서 아맙이라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어서 웹자보로 부고를 돌렸는데 하루 만에 계좌로 400만원 정도 모였어요. 하루 사이에 약 천만원 정도 모인거에요.

 

그래서 여기 와서 가장 좋은 나무를 써서, 전 정말 베트남에서 그런 곳을 처음 가 봤어요. 근데 베트남에서 최고로 좋은 나무로 관을 짜려니까 2천만원이 들어요. 저는 정말 너무 놀랐어요. 저는 천만원이면 장례를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좋은 관을 고르고 여기도 장례를 패키지로 해서 저희가 모은 비용으로 장례까지 다 치러드렸어요. 근데 그 이후에도 계속 부조금이 들어오는 거에요. 그래서 그 돈으로 할머니 가족묘를 석관으로 해 드렸어요.

 

그러고도 제가 알기론 돈이 좀 남아서 윤진원 선생님이 가지고 와서 유가족들에게 전했던 걸로 기억해요. 할머니는 저희를 용서하고 떠나시고, 할머니는 저희를 마음으로... 저희는 정성껏 할머니를 보내드린 것 같아요.

 

제가 장례식에 왔는데, 호이안에 호텔을 잡아놓고 왔어요. 제가 하루종일 장례식을 하느라 여기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당연히 제가 밤을 새고 가는 줄 아신 거에요. 그래서 여기서 밤을 샜는데, 한국은 요새 밤도 잘 안 새잖아요. 그리고 밤새면 술을 마시고 화투도 치고 하잖아요. 근데 여기는 사람들이 차만 앞에 두고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영정 앞에서 향을 피워드려야 해요. 그래서 잠도 못 잤죠.

 

차를 앞에 두고 둘러앉아서 순번을 두고 내가 기억하는 팜티호아에 대해 얘기하는 거에요. 록아저씨 차례가 돼서 내가 아는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정말 배신감을... 저는 할머니를 수백 번 넘게 만났거든요. 제가 아는 할머니는 굉장히 명랑하게 저희가 알아듣거나 말거나 얘기를 막 쏟아내던 분이셨는데 저희에게도 숨겼던 이야기가 있으셨던 거에요. 정말 모든 이야기를 다 하셨다고 생각했는데 저한테 숨겼던 얘기가 있었어요.

 

록아저씨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학살이 끝나고 여기 불도저로 마을을 다 밀었잖아요. 그리고 팜티호아 할머니는 두 발목이 잘렸어요. 여기서 살 수 없어서 다낭의 먼 친척집으로 갔는데, 그 집 식구도 발 뻗고 자지 못하는 좁은 곳이었다는 거에요. 피죽도 못 먹는 그런 상황이었대요. 거기에 자식을 둘이나 데리고 얹혀살려니까 마음이 안 좋았다는 거죠. 근데 할머니가 두 발이 없으니 노동을 하기도 어려워서 동냥을 나섰대요. 그 때 할머니 별명이, 당시 미군들이 스카이콩콩을 많이 탔나봐요. 다낭 아이들도 많이 탔는데... 할머니가 다리가 짝짝이로 잘리셨어요. 빨리 걷기가 힘드니까 마음이 급할 땐 발을 모아서 뛰어요. 그래서 별명이 스카이콩콩이었대요.

 

그렇게 동냥을 나섰는데 당시 베트남 사람들은 가난해서 동냥을 해도 소용이 없으니 결국 미군부대 앞, 한국군부대 앞으로 가는 거에요. 자식을 한국군에게 잃었잖아요. 그리고 꼭 동냥 주머니를 두 개를 가져가셨대요.

 

그래서 미군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받는 돈은 한 주머니에 모으고, 한국군에게 받는 돈은 따로 모았대요. 그리고 동냥을 마치고 집에 오면 아들들을 앉혀놓고 인두를 달궈서 한국군에게 받은 주머니를 확 턴대요. 그때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엄숙해서 꼭 무릎을 꿇고 앉았대요. 엄마 표정이 너무 무서워서 말을 안 해도 무릎을 꿇었대요. 그럼 달군 인두로 한국군에게 받은 지폐를 한 장 한 장 빳빳하게 다렸대요. 그때 엄마의 표정은 감히 말을 걸 수도 없고 너무 무서웠다... 그 후엔 돈을 셌는데, 이건 우리 씨의 목숨값.... 씨는 딸이에요. 이건 우리 판의 목숨값... 이렇게 돈을 세셨대요. 그 후 두 아들에게 ‘아들아 똑똑히 봐라, 이렇게 해서라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이렇게 목숨을 이어 가는 것이 인생이다’라고 가르쳐 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 돌아가신 날 록아저씨는 인두로 동냥해온 돈을 다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는 얘길 해 주셨어요. 록아저씨가 어머니 생각이 날 때마다 자청해서 불러주시는 노래가 있어요. 오늘도 불러주실까요?

 

베트남은 봄이 설이잖아요. 노래 제목은 ‘어머니 저는 올 봄에 집에 못 가요’, 인데요, 남녀 혼성이에요. 먼저 남성이 부르는데 어머니 저는 올 봄에 집에 못 가요. 저를 기다리시느라 어머니의 머리칼이 안개빛깔로 물들겠네요. 어머니에게 매화꽃이 필 때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저는 못 가요. 이런 내용입니다.

 

그리고 여성이 부르는 가사 내용은 설이 됐는데 이 녀석은 올 줄을 모르네요. 여성이 조상 제단 앞에서 조상들에게 하소연하는 내용이에요. 설이 다 돼서 설 떡을 찌는데 이 녀석은 집에 올 줄을 몰라요. 이번 제사에 제가 닭을 못 올리겠어요. 혹여라도 내 새끼가 오면 줘야 되니 조상님께는 못 올리겠어요. 뭐 이런 노래에요.

 

록아저씨 : 여기 오신 한국 선생님들과 베트남 학생들에게 베트남의 까이릉이라고 하는, 우리로 하면 창가같은 전통민요인 어머니 올 봄에 저는 못가요 이런 노래를 들려드릴 거에요. 그때가 전쟁통이기 때문에 집에 못 가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에요, 예를 들면 우리 하미처럼, 죽어서 못 가는 사람도 있잖아요.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도 나기도 해서 이 노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마이크가 없으니 그냥 부르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노래를 잘 했는데 일흔이 가까워서 예전처럼 노래를 못 하겠네요.

 

일동 박수

 

록아저씨 : 이 노래 부르니까 슬프네요.

 

구 :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이제 꽉 채운 5년, 6년차 되시는 데 세월이 참 빠르네요. 할머니 제단이 모셔져 있는데 오늘 탄아주머니 제단에는 향을 바치지 못했지만 여기선 모두가 향을 올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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